올 초에 석 달가량 보험회사에 보험설계사로 출근한 적이 있었다. 영업 쪽은 나의 길이 아님이 분명했지만 내 보험, 가족 보험을 점검해 보고 직접 가입하며 소소한 수수료 수익도 얻어보자는 마음에 시작했다.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보험 뿐 아니라 질병 전반에 대한 유익한 지식을 접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여러 가지 지식 중에도 암과 관련된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내가 어릴 적만 해도 암에 대한 인식은 '암에 걸리면 살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10~20년 전만 해도 암 보험이 사망이나 진단비, 수술 위주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치료비가 주된 보장이다. 어떤 치료든, 지금 없더라도 나중에 개발될 신 치료까지 포함하여 치료비 자체에 대해 보장해 주는 암 주요 치료비 보장이 올해 보험사가 앞다투어 판매하고 있는 상품이다. 이젠 암에 걸리면 죽음을 바로 떠올리기보다 몸에 무리가 가지 않으면서 치료 효과가 확실한 방법을 찾는다. 암을 치료하는 시대가 바로 지금이다.
6월 7일 자 신문 기사에 따르면, 10여년 후에는 일부 암을 제하고 대부분의 암을 치료할 수 있을 것이라 전망하는 저서가 출판되었다. '죽음의 던드리'라는 책이다.
현재 인간이 투쟁하는 상대가 '감염증' 에서 '3대 질환'으로 비중을 옮기고 있다. (3대 질환은 암, 심장 질환, 혈관 질환을 말한다) 감염증에 대한 약이나 백신 제조 기술은 코로나를 거치며 큰 진보를 이루었다. 암은 현대인들이 이전부터 경계해 오던 질병이다. 나이가 들수록 발병률이 오르고, 어리다고 해서 암으로부터 자유롭지도 않다. 한 연구에 따르면, 평생 암이 발병할 확률은 남성이 49%, 여성이 37% 정도라고 한다.
199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수술, 방사선 치료, 항암제 등에 의해 암의 치료율도 증가해 왔다. 2000년대가 되면서 인간 게놈의 해독이 이루어지고, 유전자 해석 기술이 진보하면서 유전자 질환인 암을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신약이나 치료법도 등장했다. 표적 치료, 면역치료의 등장이 한 예라고 볼 수 있다. 이 외에도 종양 용해성 바이러스를 사용한 치료제, 광 면역요법 등 새로운 약과 치료법이 속속 나오고 있다. 위암, 직장암, 대장암, 유방암은 조기 발견이나 조기 치료가 가능하면 극복할 수 있는 병으로 여겨지고 있다.
더불어 혈액의 암인 백혈병도 치료법과 약이 진화하고 있다. 암에 걸려도 죽기 어려워지는 시대가 도래했다. 개발 상황을 보면 2035년 무렵에는 대부분의 암이 치료할 수 있지 않을까 전망된다.
물론 치료가 힘든 암도 여전히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췌장암이나 담관암이 있다. 췌장과 담관은 CT 검사나 초음파 검사에서는 확인이 힘든 위치에 있어서 암의 발견부터 어렵다. 뚜렷한 통증이나 기능 장애와 같은 자각 증상이 발생하기 어렵고 눈에 띄기도 힘들어 눈치챌 정도에는 병이 상당히 진행된 경우가 많다. 또한 췌장암과 담관암은 수술의 난이도도 매우 높다. 췌장과 담관 주변에는 중요 장기들이 밀집되어 있어서 암세포가 주위 조직에 침투하도록 퍼지는 침윤 현상이나 암세포의 파종을 일으키기 쉽다. 또한 수술 시 정상 부위와 병이 진행된 부위의 구분이 어렵다. 전반적으로 20세기 후반보다는 췌장암과 담관암에 대해서도 진보가 있었던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긴 하다.
완치의 단계로 향하고 있는 질병은 암뿐만이 아니다. 근 위축성 측삭 경화증(ALS)과 척수성 근육위축증(SMA)과 같은 '신경 난치병'으로 총칭되는 질병들도 치료 가능성이 늘고 있다. ALS는 근육을 움직이는 신경세포에 이상이 발생해 뇌의 지시가 근육에 전달이 되지 않는 질병이라, 병이 진행되면 사지뿐만 아니라 호흡에 필요한 근육도 마비되어 결국 죽음에 이르는 무서운 질병이다. SMA는 척수의 신경세포 장애로 인해 사지의 근력 저하나 근 위축이 진행되는 질병이다. 근이영양증이나 파킨슨병과 같이 신경세포가 변해서 일어나는 유전성의 희소 질환이다.
ALS에 대해서는 ALS 환자의 세포에서 iPS 세포를 만들어 질병을 재현하고 변형된 신경세포에서 ALS의 원인이 되는 유전자를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이로써 원인 유전자를 표적으로 한 분자 표적 치료의 완성이 전망되고 있다. 연구개발에 나섰던 벤처기업의 시도가 실패로 귀결된 예도 나오고 있고, 지금까지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한 연구 분야이다. 반면, 신경세포가 언제 스트레스를 받고 사멸이 되는지에 대한 규명은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다. 미국 아밀릭스사는 미토콘드리아 등을 통한 세포 사멸을 방해하는 두 가지 기술을 조합한 약제를 개발해서 22년에 당국의 승인을 받았고 23년에는 일본법인을 설립했다. 이처럼 ALS라는 난치병에 대해서도 병의 극복을 향한 시도들이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다.
SMA는 20년 스위스 제약사인 노바티스가 개발한 치료제 '졸겐스마'가 승인되어 2세 미만의 유아에게 치료할 수 있으며 보험이 적용된다. 이전에는 SMA를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근육에 장애가 일어나는 만 2세까지의 시기에 신경세포의 이상을 보완하고 보정함으로 발병을 억제할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신경 난치병에서도 눈부신 성과가 발표되며 약의 개발로 이어지고 있다. 암만 아니라 신경 난치병에 의해 죽는 일도 줄어들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죽음에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했던 각종 질병이 힘을 잃고 있다. 수명이 길어지는 만큼 어떻게 노후를 건강하고 의미 있게 보낼 것인가에 대한 과제해결은 각자의 몫일 것이다. 길어진 노후 시기를 아름답게 보내기 위한 준비가 젊음의 때부터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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