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자녀를 둔 엄마라면 혼자 있는 시간의 소중함을 모를 수가 없습니다. 엄마인 저의 하루는 이렇게 흘러갑니다.
지난밤 피로에 절어 아이들을 재우다 먼저 기절하듯 잠든 날도, 빨리 잠들기가 아까워서 버티다 내일의 피로감이 두려워 새벽에 잠든 날도 저의 기상 시간은 두 아이 중 하나라도 깨는 시간입니다. 한 아이라도 깨면 나머지 하나는 자동 기상이기 때문입니다. 피곤해서 모른 척 누워있었다가는 엄마가 안 나온다며 거실에서 첫째가 대성통곡하는 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제 아침식사는 걸러도 아이들의 식사는 거를 수가 없기에 밥이나 빵을 챙겨줍니다. 중간중간 수시로 배고파하는 먹돌이 아드님들을 위해 과일, 주스, 군것질 거리는 미리미리 채워놓아야 합니다. 아이들이 원하는 놀이를 위해 엄마는 항시 대기모드여야 합니다. 역할놀이와 몸으로 하는 놀이에 푹 빠진 첫째, 자연관찰책과 돌잡이 시리즈 책을 좋아해 수시로 책을 뽑아와 읽어달라는 둘째의 놀이 친구는 모두 엄마이니까요. 틈을 봐서 집안일을 하는 순간에도 아직 어린 둘째가 형한테 치이지는 않는지, 화장실이나 현관에 나가서 장난을 치고 있지는 않은지 감시도 틈틈이 해줘야 합니다.
엄마의 손길을 끊임없이 필요로 하는 두 아들이 잠이 든 후의 시간도 오롯이 나만의 시간으로 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밀린 집안일도 해야 하고 평소에는 3순위로 밀려 고생 많은 남편과도 시간을 보내야하죠.
그런데 참 이상합니다. 그렇게 혼자 있는 시간이 간절했건만 정작 그 시간이 찾아오면 마음이 분주해질 때가 많습니다. 기다려왔던 시간을 보내는 것 치고는 의미 없는 일들로 시간을 낭비하기도 하고 말입니다. 도대체 왜 그런 걸까요?
내 안에 공존하는 두 가지 상반된 충동
심리학자 앤서니 스토는 우리의 인생은 두 가지 상반되는 충동이 늘 함께한다고 말했다. 하나는 다른 사람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자 하는 충동이고, 다른 하나는 고독을 통해 자기 본연으로 돌아가려는 충동이다.
<딸에게 보내는 심리학 편지>의 저자 한성희 교수님은 삶의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는 위의 두 가지 충동, 즉 타인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자 하는 충동과 고독을 통해 자기 본연으로 돌아가려는 충동 모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인생에 있어 이 두 충동(욕망)은 씨줄과 날줄처럼 얽혀있는 것 같다고 덧붙이기도 합니다. 바쁜 생활 속에 정신없이 지내다가도 좀 쉬고 싶다,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혼자 있고 싶다'는 내면의 목소리는 마음 깊은 곳의 '나'를 봐 달라는 음성이라고 합니다. 나의 내면세계는 나 아닌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기에 내가 이 세계를 돌볼 수 있게 해주는 고마운 소리입니다.
그런데 어쩌다 혼자 있는 시간이 생기면 즐거움은 잠시고 불안감이 엄습합니다. 이것도 해야 할 것 같고 저것도 해야 할 것 같고 마음이 분주해져 어느 것 하나 차분하게 해내지 못하다가 제 풀에 지쳐 익숙한 스마트폰이나 티비만 쳐다보게 되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왜 우리는 혼자 있는 시간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걸까요?
혼자 있고 싶지만 혼자 있고 싶지 않아
우리는 혼자 있는 시간을 갈구하지만 혼자 있는 법은 제대로 알지 못한다. 막상 혼자 있게 되면 그 시간을 아무것도 하지 않는 비생산적인 시간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혼자 있는 동안에도 나 자신을 만나려 하기보다 또다시 무언가를 하려 든다.
힘들게 얻은 나의 시간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그 시간을 방해하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혼자 있는 시간의 가치를 깨닫지 못한 상태라면 혼자 있는 시간을 비생산적인 시간으로 여겨 생산적인 활동으로 채우려 하거나, 아니면 혼자 있는 시간을 외로움과 연결 지어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다시 외로움을 잊기 위한 다른 방법을 찾으려 들게 됩니다.
우리는 혼자 있는 시간의 가치를 알아야 합니다. 혼자임을 기꺼이 즐길 줄 아는 사람이 진정 자기 자신과 연결될 수 있는 사람이고, 또 그런 사람만이 타인을 파괴하지 않고 질식시키지 않은 채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저자는 강조합니다. 혼자 있는 시간은 비생산적인 시간이 아닙니다. 혼자 있는 시간은 외롭고 고독한 시간이 아닙니다. 나를 만나는 시간,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건강한 관계를 맺기 위해 꼭 필요한 시간입니다.
고독한 사람을 내버려 둬라. 그는 지금 신을 만나고 있다.
- 릴케 <말테의 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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